퍼머컬처를 만나기 전, 클로버는 내게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풀이었다.
유치원 때는 한강에 놀러 가면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어서 끼곤 했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네 잎 클로버를 책갈피로 선물 받은 적도 있고,
전자파를 막아준다는 금으로 만들어진 모양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클로버 모양이 있는 트럼프 카드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일상에서 가끔 만나는 이 친숙한 모양의 식물이, 밭에서는 사람 대신 일을 해주는 멋진 피복 작물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피복작물로서의 클로버를 만난 건 재작년 강원도 영월에 있는 밭멍에 처음 갔을 때였다.
클로버가 나뭇잎밭 여기저기에 빼곡히 심어진 것을 보고 신기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해둔 통로 외에는 흙이 바깥으로 드러난 부분이 없었다. 그때 배운 클로버의 이점은 다음과 같다.

1. 클로버는 땅에 질소를 고정시킨다
클로버는 질소 고정 작물 (nitrogen fixer)이다. 질소는 식물의 성장에 있어서 필수적인 영양분이다.
질소가 부족한 땅에 클로버를 심어주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뿌리 덩어리 안에 있는 뿌리 결합균으로 대기 중의 질소를 땅 속에 고정시킨다. 이렇게 땅 속에 공급된 질소는, 주변에 심어진 다른 식물들에게 가서 성장을 돕는다. 비료가 할 일을 클로버가 대신해 주는 것이다.
땅이 더 윤택해지도록 영양을 공급해 주니, 밭에 키우는 작물만 심고 휑하게 땅을 드러내 놓은 상태로 비료를 사서 계속 뿌리는 것보다 낫다.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땅의 건강을 위해서도!

2. 클로버는 땅을 보호한다
클로버는 땅의 표면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뿌리를 내려 흙을 옭아맴으로써, 비가 많이 올 때 빗물에 흙이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하고 수분도 머금고 있도록 해서 비옥한 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밭멍 김지현 대표님은 작년 여름 비가 많이 올 때
피해를 거의 보지 않은 이유를 클로버와 호밀 등 여러 피복 작물을 심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포스팅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작은 농장>에서도, 유사한 이유로 자연 농법으로 재배하지 않았던 다른 농장들보다 비 피해를 적게 보았다고 설명한다.
3. 클로버는 유익한 손님들을 부른다
클로버는 꽃을 통해서, 식물들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하는 소중한 벌을 밭으로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새들에게 먹이가 되기도 한다. 여러 손님들이 오는 밭이 하나의 생태계로 살아나도록 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클로버는 해줄 수 있다.

4. 클로버는 혼자서도 잘 자란다
클로버는 씨앗을 뿌려두면 알아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너무 잘 자라서 다른 작물들의 생장을 방해하는 잡초로 여겨질 정도이다.
너무 무성해지지 않게 관리만 해주면, 위의 이점들을 톡톡히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씨앗도 저렴한 편이다. 한 종만 심지 않고 여러 종류를 골고루 심으면 해충 방지에 더욱 좋을 것이다. 다섯 개의 잎이 나는 클로버가 있다는 사실은 밭멍과 토요타 주말 농장에서 처음 발견했는데, 조금 생소하긴 했다. 징그러워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취향에 따라 세 잎 네 잎 피는 것으로 심으면 되겠다.

피복작물로서의 클로버를 관리하는 방법은
클로버는 까다롭지 않다. 뽑지만 않으면 된다.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키우고 있는 작물들 주변 흙에 뿌려두면 작물들의 성장을 돕는 영양분도 되고, 흙이 드러나지 않게 보호도 할 수 있다.
밭일을 하러 가고 오는 길에 밟아주어도 된다. 밟아두면 무성히 자라지 않고, 땅 위에 낮게 깔린 카펫이 된다. 밭멍과 토요타 주말 농장에서는 클로버가 밭 주변 통로에 심겨 있어서 밟고 다니면 되었다. 단, 밭에서 피어난 클로버들은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흙과 작물이 같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클로버를 밟고 다닐 때의 이점을 아시나요?
클로버를 한여름에 밟고 다니면 시원하다는 것은 맛있는 정원 코리아의 이진호 대표님이 알려주셨었다. 클로버의 뿌리가 지하수를 끌어올려 뿜어내기 때문이란다. 자연 분수인 셈이다. 한여름, 주말마다 토요타 주말 농장에서 클로버를 밟고 다녔는데 진짜 시원했다. 벌레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맨발로 밟고 다니면 더 느낌이 좋다고 하셨었다. 내 텃밭이 생기면 그렇게 해보고 싶다!
버리지 마세요, 땅과 입에게 양보하세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가위로 자른 클로버는 흙으로 보내주면 땅과 작물에게도 식량이 된다. 그리고, 사람의 긴급 식량도 된다!
깨끗하게 씻어 샐러드에 얹어 먹어도 좋고, 전으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생으로 먹는 것은 좀 질길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으로 만들어먹는 쪽이 훨씬 취향이었다. 작년 토요타 주말 농장에서 작물이 아직 자라고 있어 집에 가져갈 것이 없을 때에도, 클로버를 잔뜩 집에 가져와서 전으로 부쳐먹었다. 비 오던 주말에 부쳤던 클로버 전은 진짜 맛있었다.

퍼머컬처 텃밭의 일꾼, 클로버
퍼머컬처로 텃밭을 가꾸시는 분들에게 정말 정말 추천한다. 아직 클로버를 심어보지 않았다면, 꼭 심어보고 클로버의 매력을 흠뻑 즐기시길!
본문에 언급된 <위대한 작은 농장> 영화 리뷰 포스팅:
https://jivantika.tistory.com/13
꿈이 현실이 되는 영화, 몰리와 존 체스터의 위대한 작은 농장
6월 13일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다. 찾아보니 201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존 체스터와 몰리 체스터가 도시에 살다가 만난 반려견 토드를 데리고 농장을 시작하며 기록한 8년간의 이야기이다. 야생
jivantik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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