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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컬처

초보 농부가 키우기 좋은 식물: 5월에 심기 좋은 작물, 강낭콩

by 지반티카 2022. 10. 23.

식물을 작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한다. 작물은 인간이 식량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키우는 식물을 뜻하는 말로, 그 말 안에 이미 식물을 착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시선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이런 저런 시선과 생각을 빼고 그 단어를 보면 결국 텃밭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작물들이 맞기는 하다.

 

2022년 올해 퍼머컬처로 텃밭을 가꾸는 동안 참 다채로운 식물들의 생애를 만났다. 모두가 기억에 남지만, 처음 싹을 틔운 순간부터 지는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식물은 강낭콩이다. 토종 씨앗을 대출 받으러 갔을 때, 도서관에서 봉사자 선생님이 첫번째로 추천해주신 것이 바로 강낭콩이었다. 따뜻한 5월에 심으면 곧 싹이 난다. 물만 잘 주면 알아서 아주 잘 자라는데다, 열매를 맺으면 주렁주렁 열리니 초보 농부로서는 키우는 기쁨과 결실을 보는 재미가 큰 작물이다. 내년 봄 텃밭에 무슨 식물을 심을지 고민하는 초보 농부가 있다면, 꼭 심어보면 좋겠다.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강낭콩. 식물을 키워본 일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먹는 대상으로 인식이 될 것이다. 나도 심어서 키워보기 전까지는 강낭콩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큰 감흥도 없었다. 

 

토종 씨앗들. 이번에 심었던 강낭콩은 첫째줄 맨 오른쪽에 있다.

 

5월 21일에 심어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싹을 틔웠다. 흙을 밀고 올라오는 모습이 아주 힘차보였다. 강인한 생명력이었다. 그것은 나를 위에서 짓누르며 위축시키는 힘이 아니라, 같이 일어나고 싶어지는 힘이었다. 

 

5월 말

잎에 흙이 묻어있는 것조차 멋있었다. 사막에서 먼지 날리게 쌩쌩 달리는 지프차 같아보였다. 처음 식물을 맞이하는 틀밭이라, 뿌리내리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는데 강낭콩은 질소 고정 식물 답게 척박한 땅에 잘 뿌리를 내려주었다. 씨앗도 땅에 심어지고 나면 여기가 내가 자랄 땅인가, 아닌가 하고 확신이 들면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이 때 배웠다. 

 

여기서 잠깐! 알면 좋은 퍼머컬처 용어 1 

질소 고정 식물 (nitrogen fixer plant)이란, 땅에 질소를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식물을 의미한다.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도록 땅으로 내려 땅속에 고정을 시켜주는 것이다. 콩, 팥, 알파파, 클로버 등 콩과 식물들은 이러한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질소 성분이 별로 없는 척박한 땅에는 콩을 같이 심으면 다른 식물들을 키우기에도 좋다. 

6월. 호밀과 같이 잘 자라고 있다.

처음엔 호밀이 더 컸다. 씩씩한 호밀은 계속 짧게 잘라 흙을 덮어주었다. 나중에는 강낭콩이 호밀보다도 더 쑥쑥 크게 자라게 되었다. 아래 사진에서 토마토 뒤쪽에 있는 것이, 더 자란 모습의 강낭콩이다. 5월에 토마토와 바질, 딜 모종을 서로의 동반 식물 삼아 이웃으로 심고, 강낭콩을 그 주변에 심었다. 그리고 그 뒤인 6월에 라벤더 모종도 심었다. 

 

여기서 잠깐! 알면 좋은 퍼머컬처 용어 2

동반 식물 (companion plant)이란, 가까이 있을 때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식물이다. 사람도 함께 하면 같이 성장하는 친구, 서로에게 해가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식물들도 단짝 친구와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은 사이가 있다. 토마토와 바질은 대표적인 동반 식물의 예이다. 

6월, 강낭콩이 가장 잘 자란 시기.

강낭콩의 꽃은 분홍색으로 아주 여리고 작고 귀엽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강낭콩을 열매를 수확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의 눈엔 이 꽃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 때까지, 강낭콩을 키우며 그 생애를 지켜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강낭콩 싹을 틔우고 키워보는 것을 숙제로 해봤지만 그 때는 숙제일 뿐이었다. 숙제를 내주는 사람도 없는 지금,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서 강낭콩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조금씩 더 자라 있을 때마다 더 기쁜 내가 참 좋으면서도 생경했다. 그리고 꼭 아이를 낳아 키워야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부모는, 내 혈연인 부모보다는 아이를 두어 부모라 불리는 사람들 전체를 의미한다).  

 

강낭콩 꽃을 예쁘고 선명하게 찍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씨앗 사진을 보면 강낭콩은 열 알 남짓이었는데, 어쩐지 여섯 알을 심어 여섯 알 모두 발아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머지는 나중에 더 심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7월에는 여섯 그루 모두 통통한 콩이 주렁주렁 열려, 물 준 것 외에는 한 것도 없으면서 매우 보람찼다. 콩은 심은 사람에게 엄청난 기쁨을 주는 대단한 식물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열매를 남겨주어 먹을 수도 있게 해줄 수 있다니! 사는 동안 사람으로 사회에서 죽는 날까지 그렇게 일하고 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한다.  

 

7월, 주렁주렁 강낭콩

수확해서 팔 수 있는 정도의 양도 못 되는데, 텃밭에 가서 주렁주렁 열린 강낭콩을 들춰볼 때마다 든든하고 풍요로운 마음이 되었다. 강낭콩 수확하는 날도 엄청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7월 말에 코로나에 걸리면서, 눈물을 머금고 텃밭 이웃에게 강낭콩 첫 수확을 부탁해야만 했다. 감사하게도 이웃은 내가 딸 콩을 좀 남겨주고 수확을 도와주었다. 한 평 텃밭이어도 이웃의 존재가 있고 없음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첫 수확의 기쁨은 누리지 못했지만, 일상을 회복한 뒤에 남은 강낭콩의 수확은 톡톡히 누렸다. 만약에 콩을 마트에서 샀다면 마르거나 작은 콩이 들어있는 걸 볼 때 불량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키워보니 큰 아이도 있고, 작은 아이도 있고 한 게 어느 꼬투리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둥글둥글 귀여운 강낭콩.

 비료나 퇴비를 주지 않고, 경운하지 않고 가꾼 텃밭에서의 강낭콩. 여섯 그루를 합쳐 20-30알 정도 되는 강낭콩을 수확했다. 열매가 맺힐 때쯤 되자 노랗게 물이 들기 시작한 강낭콩은, 열매에 모든 양분을 주고 수확하고 나서는 정말 급격히 시들었다. 커다란 나무가 시들어 고목이 되는 것처럼 앙상해졌다. 5월 말에서 8월 초중순까지, 짧고도 강렬한 생애. 나의 삶은 지금 어느 시기쯤 와 있는 것일까? 확실한 건, 육체의 죽음은 한 번 있을 것이라는 것과 삶의 끝이 언제까지인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콩은 나중에 밥에 넣어 같이 먹었다. 그 맛이 어땠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토종 씨앗 도서관에 돌려주고, 나중에 심을 수 있게 따로 분류해서 냉장 보관 중이다. 

 

여기서 잠깐! 아주 쉬운 씨앗 보관 TIP

씨앗은 밀봉하여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종자 회사에서 사는 씨앗은 유효 기간이 명시되어있지만, 토종 씨앗이나 토착 씨앗은 잘 보관이 되어있다면 시간이 좀 지난 후에도 발아할 수도 있다! 

 

올해의 텃밭은 11월까지이니 아쉽게 끝을 향해 가고 있지만, 계속 키울 수 있는 나만의 땅이 생기면 강낭콩을 또 심을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강낭콩을 보고 있으면, 혼자만의 텃밭을 해본 올해의 기억과 흙을 살리고 식물들과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실천했던 나의 마음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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