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텃밭러의 어려움: 자꾸 비교하게 된다
해보지 않은 일이란 어려운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완벽하고 싶은 우리는 처음 하는 일도 잘 해내려고 하고,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크게 실망하고 금방 관둬버리고 만다. 하지만 텃밭의 생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잘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렸을 때 잠깐 갔던 주말농장의 기억과 밭멍에서의 호미질 외에는 이렇다 할 밭에서의 경험이 없었으니까.
(아, 대학교 봉사 캠프 때 나무를 톱으로 베어 본 적은 있었다. 다른 건장한 청년들 여럿과 같이 했기 때문에 혼자서 해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얼마나 생소한지, 씨앗을 심고 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대한민국의 초중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식물의 씨앗을 심으면 어떻게 되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면 또 다른 잎이 나고, 벌이 오면 꽃이 피고, 꽃잎이 떨어지는 사이 열매가 맺히고 등등 그 세세한 과정이나 시기 같은 것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것이다.
그래서, 씨앗을 심은 첫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 다시 텃밭에 갔을 때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자란 것이라곤 기존에 심어져 있었던 호밀뿐이었기 때문이다.
농장에서도 좀 안쪽에 있는 텃밭에 가려면, 농장 입구를 들어가서도 여러 사람의 밭들을 지나가야 한다. 다른 텃밭들을 먼저 보고 나서 도착한 나의 밭은 한층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들 모종을 심어 상추에 가지에, 메리골드와 오이, 고추 등 다양한 식물들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첫 싹의 주인공은
하지만 우리 밭에도 아주 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 사이 자라있는 호밀을 베고 보니, 흙을 밀고 올라온 작은 줄기가 보였다. 오, 이럴 수가!
첫 싹의 주인공은 강낭콩이었다. 여섯 알을 심었는데, 두세 아이들이 먼저 싹을 틔운 것이다. 강낭콩은 토종 씨앗 도서관에 계셨던 자원봉사자 선생님의 추천으로 심게 된 것이었다. 5월 말에 심을 거라고 하니까, 요즘에 심으면 아주 잘 날 거라 하시면서 씨앗을 주셨었다. 초등학교 때 키워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는 샬레에 물 적신 솜을 올리고, 그 위에 강낭콩을 올려 관찰일지를 적었었는데, 지금은 땅에 심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세 알은 조금 더 늦게 싹을 틔워, 먼저 싹을 틔운 아이들과 사이좋게 자라게 된다).
여기서 잠깐, 아주 쉬운 강낭콩 심기 TIP!
0. 땅에 먼저 물을 주어, 물이 어느 정도 흡수되도록 둔다.
1. 촉촉한 흙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로 구멍을 낸다.
2. 강낭콩을 한 개 심고, 흙을 덮는다. 꼭꼭 누르지 않아도 된다.
3. 크게 자랄 예정이니, 20-30cm 정도 간격을 두고 또 심는다.
4. 심은 곳에 물을 흠뻑 준다.
* 내가 심은 강낭콩은 토종 씨앗으로 여섯 알 중 여섯 알이 모두 발아했다. 발아율이 좋은 종자라는 것을 안다면, 한 구멍에 한 개씩 심는 것이 좋다. 나중에 다시 옮겨 심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땅을 뚫고 나오는 기세가 아주 힘차게 느껴졌다. 참 대단한 생명이었다. 무거운 머리를 들고 스스로 일어나는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위에서 보면 마냥 작고 귀엽지만, 몸을 낮추어 앉아 눈높이를 맞추면, 그렇게 씩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연두색 줄기가 구불거리는 모양을 보는 게 즐겁기도 했다. 존재만으로 기쁨을 주는 생명이란, 참 소중하다.
하지만,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아
"씨앗을 심으면 싹트는데 2주는 지나야 하더라고요."
농장 선생님이 밭을 지나다 해주신 말씀이었다. 밭이 아직 잠잠한 게 이상한 건 아니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안함이 쉽게 가시지는 않았다.
씨앗을 또 심었다. 새로운 씨앗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심었다. 씨앗을 심는다고 바로 싹이 더 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틀밭 앞에 쭈그려 앉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주섬주섬 심다 보니 또 많이 심어버렸다.
"날이 더워서 땅이 금방 금방 말라요. 물을 흠뻑 주셔요."
선생님의 말을 따라서 물 호스를 땅 가까이에 대어놓고,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해가 강하고 더운 날, 호스에서 나오는 물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물줄기 사이에 희미하게 보이는 무지개가 보였다. 새소리와 이따금씩 부는 바람도 좋았다. 그런 걸 발견하고 아름다움에 푹 빠져있을 여유를 찾으려 텃밭에 온 게 아니었을까. 치유는 누가 뭘 해줘서, 또는 어떤 상황 때문에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하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무언가가 있을 때, 우리는 한층 더 살아난다.
씨앗과 모종을 심은 뒤 2주는 농장에서 관수 관리를 한다고 했으니, 언제든 씨앗은 준비되면 싹을 틔울 것이었다. 그 순간을 기다리는 여유가 없는 게 지금의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함. 무언가가 생각대로 되어야 하는데, 되지 않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었다. 나의 고질병이자, 많은 현대인들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요가와 명상을 해도, 경험이 없는 일을 처음 해볼 때 여유가 없어지는 건 똑같았다. 다만, 조급해졌음을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고, 그 상태에서 벗어날 기회를 조금 더 빨리 잡을 뿐이다.
텃밭에서 얻는 에너지, 하루를 살아갈 힘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찍어두었던 강낭콩 사진을 종종 꺼내보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컸을 강낭콩을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갈 응원의 힘을 얻는 것이다. 씨앗을 심었을 뿐인데, 왜 기분이 좋은 것일까? 또 텃밭에 가게 될 그다음 주 주말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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