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는 키우기 어려운 작물일까
작년, 6개월 동안 토요타 주말 농장에서 한 평 텃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정말 신났다.
키우고 싶은 많은 식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옥수수의 생애가 특히 궁금했다. 씨앗은 어떻게 싹이 틀까? 열매가 정말 맺힐까? 정말 옥수수 수확이 가능할까? 쪄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클까?!
키워본 결과, 시기를 잘 맞추고, 위치를 잘 선정해서 심으면 옥수수는 알아서 잘 자라는 튼튼한 식물이었다.
운 좋게 몇 개월간 지켜본 옥수수의 생애를 같이 살펴보자.
6월에 직파로 심은 옥수수
옥수수를 심는 시기는 다양하다. 4월 경에 심을 수도 있고, 5월 초가 지나 6월 정도까지도 심어도 괜찮다. 가을 전에 수확할 수가 있다. 7월 정도에 심게 되면 가을 재배로 넘어가 조금 더 기다려서 수확을 하게 된다. 작년에는 6월에 씨앗을 텃밭에 바로 심었다. 모종을 심으면 빨리 자라고 빨리 수확하는 기쁨이 있다. 그렇게 하려면 모종이 땅에 적응할 때까지 잘 관리해 주고, 기다려주기도 해야 한다.
한편, 직파를 하면 씨앗이 땅과 서로 교감하면서 바로 적응을 하여 싹을 틔우게 되어, 심은 땅에 조금 더 적응을 잘 하는 튼튼한 작물로 자란다는 이점이 있다. 식물이 잘 크는 데는 후자의 방법이 훨씬 좋다고 해서, 옥수수 역시 땅에 직접 심었다.
씨앗을 심을 때는 손가락 한 마디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얕게 심었다. 다른 씨앗들보다 크기가 있으니 조금 더 깊게, 그렇지만 너무 깊게만 심지 않으면 된다. 대학 찰 옥수수를 심었었는데, 씨앗을 샀던 종묘사 사장님이 심고 나서 비료 같은 것 주지 말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몇 번이고 알았다고 대답했다. '비료 줄까 봐 걱정할 일은 없어요, 저는 퍼머컬처로 하거든요'라고 대답하면 못 알아들으시겠지, 하고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키 큰 옥수수는 어디에 누구랑 심으면 좋을까
옥수수는 키가 크다. 해를 좋아한다. 밭 가장자리에 심으면 다른 식물들을 가릴 수 있으니, 밭 가운데에 심어주었다. 먼저 심어둔 강낭콩 주변에 심었는데, 이유는 둘이 가까이 심으면 좋은 동반 식물이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콩이 잘 자랄 수 있게 자연적인 지지대가 되어주고, 콩은 땅 속에 질소를 고정시켜 옥수수의 성장을 돕는다.
여러 군데 나누어서 심었지만, 작년 포스팅한 강낭콩*과 오크라* 주변에도 심게 되었다. 둘 다 키가 큰 친구들이니, 옥수수가 그 사이에 있어도 다들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여기서 잠깐! 옥수수 세자매를 아시나요?
옥수수 세자매는 중앙아메리카 인디언, 즉 선주민들의 전통 농법에서 온 동반 식물의 조합이다. 옥수수, 콩, 호박이 바로 그 세 자매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콩은 질소를 고정시켜 옥수수와 호박에게 자라기 좋은 땅을 만들어준다. 옥수수는 콩의 지지대가 되어주고, 호박은 옥수수와 콩 아래에서 땅 위를 기어가며 사방으로 넓게 자란다. 땅을 넓은 잎으로 덮어서 햇볕에 드러나 마르지 않고 촉촉하게 유지되도록 해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 잘 크니, 이렇게 지혜로운 조합이 또 있을까.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예리한 관찰력과 지금까지 전해져 온 전통 깊은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옥수수 세자매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한 평의 아담한 사이즈라 호박은 하지 못하고 옥수수의 콩의 조합으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둘의 조합도 주어진 여건 안에서는 충분히 좋았다.
엄청난 속도로 쑥쑥 자라는 옥수수
옥수수가 크니 한 여섯 알 정도만 심었었다. 알맞은 위치라 느낀 듯한 아이들 셋 정도가 싹을 틔웠다. 물을 많이 줄 수 있었으면 더 자랐을 것 같기도 한데, 텃밭이 있는 곳이 워낙 해가 쨍쨍해서 흙이 잘 말라 덜 자랐나 싶기도 했다. 한 주 지나서 주말에 갈 때마다 쑥쑥 자란 모습에, 밭이 작아 잘 못 크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비가 아주 많이 올 때 어떻게 견디기는 했지만 조금은 힘을 잃은 듯한 아이도 있었고.
세 아이들 중 어렵게 만난 옥수수는 딸랑 한 개. 옥수수 수확 시기는 2022년 8월 말이었다. 정말 하찮다고 하기에도 작은 크기였다. 그래서 기다림의 가치와 열매 하나의 소중함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종묘사 사장님 말대로, 달고 맛있었다. 작아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작은 옥수수에 담긴 자연의 신비
현대 사회에서 물질을 얻기란 쉽다. 장보기도 쉬워졌다. 스마트폰에서 손으로 몇 번 태핑 하면 바로 다음날 필요한 물건과 식재료가 집 앞에 와 있다. 그런데, 그래서 모르고 지나간다. 물건의 소중함도, 농산물의 소중함도. 특히 농산물은 키우는 사람의 애정만으로는 잘 클 수 없어서 더욱 소중하다. 날씨를 봐가며 순간순간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하고 행동한 뒤에도 오로지 자연의 순리에 맡겨야만 열매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흙과 바람, 물, 공기, 옥수수에게 다녀간 익충 손님들, 사람의 노력과 기다림. 이 모두가 조화롭게 담긴 결정체가 옥수수의 형태로 내 손바닥 위에 놓였으니, 신비롭고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텃밭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이웃 지인이 있어서 옥수수를 수확한 뒤에 찍은 영상을 보여주자, 가만히 보더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농사를 지어 돈을 벌자고 하면 골머리를 앓았을 수 있겠지만, 돈에 대한 생각 없이 자연과 연결하고 즐겁게 키우니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 내게로 왔다. 입으로 들어가는 채소를 직접 키워보는 재미와 기쁨을, 보다 많은 도시인들이 체험해보았으면 좋겠다. 주말 농장이나 텃밭이 없어도, 농장*에 가서 일일 체험도 해볼 수 있을테니까!
<끝>
* 같이 보면 좋은 포스팅:
강낭콩 - https://jivantika.tistory.com/10
초보 농부가 키우기 좋은 식물: 5월에 심기 좋은 작물, 강낭콩
식물을 작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한다. 작물은 인간이 식량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키우는 식물을 뜻하는 말로, 그 말 안에 이미 식물을 착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있
jivantika.tistory.com
5월에 심기 좋은 강낭콩의 동반식물, 오크라
오크라를 아시나요? 일본 문화에 익숙한 편이다. 전공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 잠깐 살아본 적도 있었다. 한창 유행할 땐 제이팝과 일본 드라마에 빠져 살기도 했다. 일본에 살 때도 먹어보진 못
jivantika.tistory.com
* 퍼머컬처 농장 추천:
https://www.instagram.com/battmung.log/
본 포스팅의 내용 및 이미지의 무단 전재, 재배포, 복사를 금지합니다.
인용 시 저자를 명시하여 출처 링크와 같이 공개해 주세요!
도움이 되셨다면 댓글과 공감, 구독 부탁드립니다 =)
'퍼머컬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의 집에 네 기둥 세우기: 퍼머컬처의 네 번째 원칙을 실행하는 포레스트 요가 워크샵 (4) | 2023.12.06 |
---|---|
강원도 영월 청년 대상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 (PDC): 2023 8월 (0) | 2023.07.19 |
퍼머컬처 텃밭의 팔색조, 한련화 (0) | 2023.07.07 |
클로버: 사람 대신 일해주는 멋진 피복 작물 (0) | 2023.06.28 |
꿈이 현실이 되는 영화, 몰리와 존 체스터의 위대한 작은 농장 (0) | 2023.06.19 |
댓글